2022년 12월의 강릉. 추위에 강이 얼었다.
영화가 가장 많이 생각나는 계절은 언제일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겨울이다. 그 이유를 말한다면 그저 겨울이기 때문이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그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겨울에만 내리는 눈은 그 계절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겨울에 모여 있는 크리스마스와 설날은 그 계절을 기다리게 만든다. 혹독한 추위는 온도 자체로 냉담하지만 붕어빵으로 누리는 소박함은 희한하게 따뜻하다. 이 모든 걸 함축하는 건 겨울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겨울의 낭만은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의 기후적 특성에 따라 지속되는 기간이 제한적이다. 이상기후로 겨울이 더 길어진다고 하지만 그게 기쁜 일이 될 수는 없으며, 우리에게 프랑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가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기 때문인 것처럼 겨울 또한 매일 지속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렇듯 겨울이 가진 계절적, 그리고 제한적 특성으로 겨울의 영화는 더 매력적이다.
겨울의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낭만으로만 말할 수 없다. 겨울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인 추위를 활용해 인간의 쓸쓸함을 나타내는 것 또한 겨울 영화의 묘미다. 추위를 나타내기 가장 쉬운 방법은 그저 겨울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위에 쌓인 눈과 그곳에 홀로 서있는 인물. 하늘에서 수직적으로 내리는 눈. 그리움이 쌓이듯 주위에 쌓인 눈과 계속해서 내리는 눈처럼 치워도 치워도 어쩔 수 없는 마음. 겨울은 그리움에 있어서 왜 이리 차가울까.
출처: 네이버 영화 <러브레터>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겨울은 한정적인 시간이지만 반복적이다. 기다리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겨울이 올 거란 걸 알기 때문에 그리움의 상대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는 것 같다. 겨울을 다시 만나듯 그 상대방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옛 연인의 이름과 똑같은 사람에게서 온 편지와(영화, 러브레터) 사랑했던 상대방에게서 온 편지(영화, 윤희에게)는 재회에 대한 희망을 심는다. 그리움이 쌓인 눈을 밟고 그리움이 치는 눈을 맞는다. 내리는 눈의 수직적 구도와 쌓인 눈의 수평적 구조의 반복으로 사랑에 대한 인물의 복합적인 마음을 그린다.
출처: 네이버 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이다> 스틸컷
흑백 영화가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한 겨울은 흑백 필터를 통해 인물에게 닥쳐오는 차가움을 더 냉혹하게 만든다. 사실 흑백 필터를 씌우지 않아도 흑백과 가장 가까운 건 겨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얀 눈과 낙엽이 다 진 검은 나무들, 검은 코트를 입고 회색 목도리를 두른 사람들. 그런 친숙함이 겨울의 흑백 영화를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도 있지만 흑백의 필터에서 느껴지는 차가움도 무시할 수 없다. 흑백 필터를 통해 시각적으로 차가운 이미지를 주고 심리적으로 차가운 감정을 준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내 몸 안의 혹과(영화,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나, 그리고 어머니의 역사는(영화, 이다) 흑백의 필터를 만나 우리를 차가움에 몰입 시킨다.